8. 레디메이드 인생

'차 한 잔 문학 한 모금' 시리즈!
하루 중 자투리 시간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학 작품들을 선정하여 정성껏 제작하였습니다. 스마트 기기에서 전자책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세요!

채만식 단편소설, <레디메이드 인생>

1934년 5월부터 7월까지 『신동아』에 발표되었던 채만식의 소설이다. 일제 감정기에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한 지식인의 비애와 좌절을 사실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란 만들어 놓고도 팔리지 않는, 임자 없는 기성품 인생을 의미한다.

"P는 대학을 나온 실직 인텔리로서 극도의 빈궁에 시달린다. 어느 날 P는 모 신문사의 K사장을 찾아가 채용을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K사장은 P에게 도시에서 직장을 구하지 말고 농촌에 가서 봉사 활동이나 하라는 동문서답격의 충고를 한다. 당장 먹을 것마저 없는 P는 K사장의 말이 ‘엉터리없는 수작’임을 절감하면서, 인텔리를 양산하고는 외면하는 역사와 사회를 원망한다. 집으로 돌아온 P에게는 형으로부터 온 편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혼한 아내가 낳은 아들을 대신 키우고 있던 형은 아이가 학교 갈 나이가 다 되었으니 데려가라 한다. 아들을 데려오기는 하지만 학교에는 보내지 않으리라 P는 결심한다."

-작품 속으로

M이 신을 벗고 들어와 먼지 앉은 책상 위에 걸터앉으며,
"춘래불사춘일세."
하고 한마디 왼다. H도 따라 들어와 한편에 앉으며 한마디 한다.
"아직 괜찮아……거리에서 보니까 동복 입은 사람이 많데……"
"괜찮기는 무어 괜찮아…… 우리가 길로 돌아다니니까 사방에서 아이구야! 소리가 들리데."
"왜?"
"봄이 발 밑에서 짓밟히느라고."
"하하하하."
세 사람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

<레디메이드 인생>이 발표된 뒤 80년이 흘렀다. 다시 읽은 <레디메이드 인생>은 여러 모로 흥미롭다. 우선 주인공인 P가 배회하는 1930년대 경성의 풍경에 대한 묘사가 신선하다. 전차가 오고 가는 광화문 네거리의 풍경은 현재의 광화문과 어울려 기묘한 울림을 준다. P가 기거하던 삼청동은 이제 근사하게 꾸며진 카페로 가득 차 있다. 채만식의 경성과 우리의 서울은 이제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설의 전편을 채우고 있는 들뜬 분위기와 그 속에 언뜻 비치는 서글픔은 도무지 가시질 않는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P가 떠올린 상념을 살펴 보자.

“인텔리… 인텔리 중에서도 아무런 손끝의 기술이 없이 대학이나 전문학교의 졸업 증서 한 장을 또는 조그마한 보통 상식을 가진 직업 없는 인텔리… 해마다 천여 명씩 늘어가는 인텔리… 뱀을 본 것은 이들 인텔리다.” 

-이영훈의 두 번 읽은 책  중에서(경향신문)